4월 셋째 주간 이모저모 1.예배 예배 때마다 노래로 부르는 주기도문송 가운데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 것과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옵시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죄는 인간 부조리(不條理)의 모든 것을 포함하겠지만 “빚”이라는 의미도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죄사함이란 빚을 탕감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 보입니다. 빚을 탕감 받는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은혜로운 사람이 되고 우리 또한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것이 우리의 삶을 아주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설교발췌 부족함 없는 삶, 가능한가?(시 23:1-6, 정용섭목사) 오늘 현대인들에게 문제는 자신의 영적 정체성을 양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 알아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 목자 같은 존재는 없어도 괜찮다고 여깁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목자 표상은 오히려 거추장스럽습니다. 과도한 자신감과 맹목적인 자아숭배로 사는 겁니다. 그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 잘 적응하고 나름 노력하면 남부러워할 거 없이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돈만 많으면 풀밭은 지천으로 널려있고, 마실 물도 수도관과 정수기를 통해서 자동으로 공급받습니다. 현대 지성적인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교는 종교적 잔소리꾼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허풍쟁이나 아첨꾼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네요. 자신들은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할 양이 아니니까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싶겠지요. 맞는 말인가요? 선한 목자 없이 사람이 삶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까요? 설교 앞 대목에서 인간 실존이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는 거와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즐기면서 살아도 인간은 본래 고독하고 불안하다고 말입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실존을 외면하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신처럼 따릅니다. 그게 그나마 자신들에게 위로가 되니까요. 이런 위로는 임시처방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술을 마시거나 설탕물을 마시는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라는 사실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사람들의 인생에는 근원적인 생명의 깊이에서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아멘. 2. 교우동정 봄비가 내리면서 살짝 쌀쌀했습니다. 오랫만에 M. 윌리엄 & 신*아 부부(신장로님 사위, 딸)께서 현장예배에 오셨군요. 윌리엄선생은 설거지까지도 수고해주셨어요.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오늘 성경봉독을 담당하신 함*숙권사님께서는 독서원고를 모두 자필로 쓰셨다고 하네요. 그 정성이 좋은 열매로 맺히리라 믿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지예집사님의 바이올린연주(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운영곡)가 있었습니다. 아주 감동적인 곡 & 연주 감사합니다 . 포항과 울산에서도 현장예배에 참여하셨습니다. 먼 길 잘 다녀가시길 빕니다. 중식을 장만해주시는 분들게 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아주 풍성했습니다. 중식후에는 성가연습을 했습니다. 베이스파트 대원들이 사정상 모두 불참하셨습니다만 나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신*자집사님은 수술 잘 받으시고 집에서 회복중이십니다. 깨끗하게 잘 회복되어 건강하게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성가연습후에는 몇몇 분들이 보현산 기슭에 사시는 김*연 집사님 댁에 방문하였습니다. 오가는 길에 아름다운 꽃들도 구경했습니다. 마당에 심어놓은 예쁜 꽃들을 보느라고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차한잔과 즐거운 담소로 화기애애(和氣靄靄)했습니다. 이런 저런 중보기도가 필요하신 교우들 생각하시면서 기도로 힘을 모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한주간도 평안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