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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
제목12월 셋째 주간 이모저모2023-12-18 10:13
작성자 Level 9

    12월 셋째주 이모저모

 

    1. 예배

    우리 교회의 예전예배의 중요한 순서 가운데 독서가 있습니다. 구약의 두 본문, 신약의 두 본문을 읽습니다. 이러한 독서는 성서를 경전으로 하는 기독교의 중요한 전통입니다.

    예전의 순서로써의 독서 뿐 아니라 일상의 삶 가운데서도 성서읽기를 부지런히 해야합니다.

성서를 읽으려면 두가지 관점에서 균형과 조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문자적·사실적 읽기와 역사적·은유적 읽기입니다. 성서의 장르에 따라 잘 구별하여 읽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설교발췌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61:1-4, 8-11,정용섭목사)

 

 

 “슬픈 자에게 위로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슬픈 자는 단순히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게 아닙니다. KJVmourn(애도하다)로 번역했습니다. 자기 신세를 슬퍼할 수도 있으나 근본에는 옳지 못한 세력에 의해서 벌어지는 불행에 대한 애도이고 분노이며 연대입니다. 5장에 나오는 팔복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해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등등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슬픔과 타자를 향한 연민으로 가득합니다. 이사야가 말씀을 선포하던 당시 유대인들의 영혼이 바로 그랬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살던 유대인 중의 일부가 우여곡절 끝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으나 그곳에서의 현실 역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예루살렘은 50년 동안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a절에 묘사되었듯이 그들은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는 영혼이 슬픈 이들을 어떻게 위로한다는 것일까요? ‘은혜의 해를 선포한다고 했습니다. 은혜롭다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רָצוֹן֙(라소운)받아들여질 수 있다.’라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KJV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은혜로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은혜의 해는 구약의 안식년과 희년 전통에 속합니다. 안식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해이고, 희년은 7년이 7번 지나간 다음 해를 가리킵니다. 안식년과 희년이 오면 모든 왜곡된 질서가 본래의 질서로 회복됩니다. 종으로 팔린 사람이 종에서 풀려납니다. 흉년에 판 땅이 다시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안식년과 희년은 안식일 전통에 뿌리를 둡니다. 안식일은 일상을 멈추고 하나님의 창조와 출애굽을 찬양하는 날입니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 전통은 인간에 의해서 무너졌던 정의와 평화가 갱신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근본에 담고 있습니다. 인간다움이 회복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산이 낮아지고, 골짜기는 매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경험하는 때이며,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때입니다. 이런 예언자적 상상력 없이 거칠고 비루하며 슬프기 짝이 없는 이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2. 교우동정

  김*원형제님께서 교우등록을 하셨습니다. 신학적 소양과 노래실력이 막강합니다. 환영합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통영에 사시는 임*근집사님께서 현장예배에 오셨습니다. 먼거리 잘 다녀가시길 빕니다.

  박*수집사님께서도 현장예배와 설교복기에 참여차 오셨습니다.신학에 대한 열의가 뜨겁습니다.^^

  오랜만에 신슬아 & 마이클 윌리엄부부(*숙권사님 & *만장로님 따님 그리고 사위)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호적에 함*순권사님에서 함*숙권사님으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중식은 찰밥이었습니다. 아주 감칠맛이 있더군요. 찰밥 속에 들어간 콩류는 류 & 설집사님께서 직접 재배하셨다고 하네요. 고맙게 잘 먹었습니다.

 독감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계시네요. 속히 쾌유하시길 빕니다.

 엄*희집사님이 소개한  지인으로부터 기증받은 예배실사무용집기들이 꽤 들어왔습니다. 다 쓸만하고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3. 설교복기

 오늘 설교복기는 우리의 하나님 이해가 확정적인 것이 아니며 그 너머에 또 다른 차원들이 있다는 점을 짚어주셨습니다. 마치 중력의 법칙이 최근 물리학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패러다임을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습니다. 결국 예수의 차원으로 부단히 접근해야 하겠습니다.

 

 성탄절도 다가오고 이런 저런 일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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