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넷째 주간 이모저모 1. 예배 사도신경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카톨릭교회와 개신교에서 아주 오랫동안 신앙고백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완벽한 신앙고백문은 없겠습니다만 사도신경은 필수적인 신앙의 요소들을 잘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데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사도신경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마침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을 정용섭목사님께서 잘 강독해주신 책이 있습니다. 잘 참고하시면 많이 유익할 것입니다. 설교발췌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다!(엡 1:15-23, 정용섭목사) “바울은 그 본질을 ‘하나님의 충만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무엇일까요? 충만(πλήρωμα)은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충만을 질적인 차원이 아니라 양적인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교회에 신자들도 많이 모이고 열정적으로 기도드리고 선교도 많이 하고 세상에서 칭찬도 많이 들어야 충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유럽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예배에 오는 이들이 적고, 예배 분위기도 뜨겁지 않다고 말입니다. 교회당이 술집으로 팔린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유럽 교회에 영적 다이내믹이 떨어지는 건 분명하나,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생각하다가는 교회의 본질을 놓칩니다. 비유적으로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인구밀도가 아주 높은 서울이 생명 충만한 곳인지,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이 생명 충만한 곳인지 말입니다. 물론 농어촌 소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의 서울 집중화 현상은 심각합니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겁니다. 시골에 사람이나 카페나 자동차나 매연은 많지 않아도 나무는 많고 새도 많고 흙도 많고 곤충도 많습니다. 어디가 더 생명 충만한 곳인가요? 충만하다는 말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듯이 그분의 충만하심도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볼 눈을 가진 사람만 볼 수 있고, 느낄 줄 아는 사람만 느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경험한 사람입니다. 이전에 자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던 것들을 ‘해로 여기고 …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다.’(빌 3:7,8)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그는 과감하게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충만하심이라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영적인 충만함을 느끼고 있나요? 그래서 큰 교회당 건물이 없어도 전혀 외롭지 않게, 주눅 들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2. 교우동정 날씨가 비교적 쌀쌀한 초겨울, 11월 마지막 주일예배는 현장예배에 30분정도, 온라인으로 50분정도의 교우분들이 참여하셨습니다. 예배진행, 안내, 독서, 설교, 반주, 중식 & 간식준비, 설거지, 청소, 강단장식 등등으로 예배를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현장예배 참여를 위해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각 가정에 이런저런 기도제목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가족간에 불화를 겪으시는 분들, 생계를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분들,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해결에 도움이 될만한 좋은 경험과 정보들을 공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단 앞면에 알파와 오메가 글자 장식을 보시면서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역사를 묵상하시는 기회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3. 운영위원회 11월 정기운영위원회에서는 2024년 새해교회운영관련에 대한 논의를 중점적으로 하였습니다. 교회의 건강한 운영과 발전을 위한 좋은 의견들을 말씀해주시면 최대한 반영하도록 할 것입니다. 교회가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미래세대를 위해 성서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교회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많은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럼 한 주간도 주의 평화가 넘치시길 빕니다. |